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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金垓)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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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달원(達遠)
호(號)근시재(近始齋)
생년1555(명종 10)
졸년1593(선조 26)
시대조선중기
본관광산(光山)
활동분야문신 > 문신
김부의(金富儀)
조부김연(金緣)
저서『근시재집』

[상세내용]

김해(金垓)
1555년(명종 10)∼1593년(선조 26). 조선 중기의 문신‧의병장.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달원(達遠), 호는 근시재(近始齋).

관찰사 김연(金緣)의 손자이며, 김부의(金富儀)의 아들이다. 예학(禮學)에 조예가 깊었고 조신(朝臣)의 천거로 1587년 광릉참봉(光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사양하여 나가지 않았다.

이듬해 사직서참봉(社稷署參奉)으로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589년 연은전참봉(延恩殿參奉)으로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 승문원정자를 지내고, 한림(翰林)에 선발되어 예문관검열에 제수되었다.

그해 10월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사건이 일어나고, 11월 사국(史局)에서 사초(史草)를 태운 사건에 연루되어 면직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향리 예안(禮安)에서 의병을 일으켜, 영남의병대장으로 추대되어 안동군위 등지에서 분전하였다.

이듬해 3월 좌도병마사 권응수(權應銖)와 합세하여 상주 당교(唐橋)의 적을 쳐서 큰 전과를 거두고, 4월 서울에서 부산으로 철수하는 적을 차단, 공격하여 대승하였으며, 5월에는 양산을 거쳐 경주에서 이광휘(李光輝)와 합세하여 싸우다가 진중에서 병사하였다.

1595년 홍문관수찬이 증직되고, 1893년 이조판서가 추증되었다.

저서로 『근시재집』이 있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國朝榜目
葛庵集
近始齋集

[집필자]

김석희(金錫禧)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